거대 운석 충돌 같은 걸로 지구가 멸망한다면
자고 있을 때면 가장 좋겠고
아니면 평소 안 먹던 맛있는 걸 먹고 있을 때였으면 좋겠다.
최소한 화장실에 있을 때만 아니면 된다.
생의 마지막 몇 초를 싸면서 날아가고 싶지는 않으니까.
거대 운석 충돌 같은 걸로 지구가 멸망한다면
자고 있을 때면 가장 좋겠고
아니면 평소 안 먹던 맛있는 걸 먹고 있을 때였으면 좋겠다.
최소한 화장실에 있을 때만 아니면 된다.
생의 마지막 몇 초를 싸면서 날아가고 싶지는 않으니까.
Posted at 08:05 오전 | Permalink | Comments (1) | TrackBack (0)
별로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아닌가? 아니라면 슬픈 일이다.) 느낀 것들을 잠깐 정리해 본다.
단순한 생명유지장치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끼고 안심하기 위해 사람이란 항상 뭔가를 새로 만들고, 만들었으면 유지하고 더 발전시키고 향상시키고 거기서 다른 것을 파생시켜서 또 만들어 내는 일을 평생 하게 된다. (그 중 중요한 것 대부분은 실제로는 다른 동물들도 다 하는 거라서 내가 인간인가와는 별 상관없긴 하지만 여튼)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기획서와 보고서와 시말서를 쓰고, 친구를 만들고, 애인을 사귀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또 애인을 사귀기도 하고, 대화를 하고 욕도 하고, 건물을 짓고 폭파시키고, 사람을 살려 내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1. 만들기
뭔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창의성이다. 그런데 이 창의성은 하늘에서 떨어지는가? 아니다.
차야 넘친다.
기존의 것 몇 십, 몇 백, 몇 천 개가 들어와서 서로 녹아들면서 쌓이다가 어느 선을 넘어서 넘쳐나는 것들이 새로운 것이다.
그래서 집어넣는 정보의 양도 중요하고 다양성도 중요하다. 편식하면 결과물의 독창성이 떨어지고, 그렇다고 너무 다양하게 섭취하기만 하고 양이 너무 적으면 애초에 나오는 것도 없다.
한 가지 종류의 구성원으로만 이루어진 조직이 취약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고, 대부분의 동물이 자기 혼자 아이를 낳지 않고 암수의 유전자를 힘들게 섞는 것도 다양성을 위해서이다.
반면 소수정예의 별동부대들이 있긴 하지만 역시 거의 같은 규격으로 이루어진 정규군의 규모가 제일 중요하다. 절대적인 양은 어떤 경우든 중요하다.
내가 제어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 무엇을 얼마나 채울지
- 얼마나 쌓이면 넘치게 할지
책 한 권 읽고 비슷한 글 하나 쓰는 것도 문제겠지만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해서 기준선을 높게 잡아 버리면 넘쳐나는 게 없다.
결국 창의적인 인재를 키운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
- 그러면 저마다의 개성에 적합한 분야를 중심으로 창의력이 발달한다. 물론 모두가 스티브 잡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세상 망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얼마나 제공하고 있는가?
2. 유지하기
만들었으면 유지도 하고 개선도 해야 한다. 그리고 뭔가를 만들어야겠다는 동기와 열정 자체도 유지해야 한다. 그냥 열심히 하면 되는가? 아니다.
쓰면 닳는다.
뭐든지 쓰면 닳는다. 재능도, 열정도, 사랑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세상에 영구 기관은 없다. 그래서 그냥 열심히만 하면 지쳐 떨어진다.
공부할 때의 집중력은 몇 십 분이면 다 없어진다.
같은 업무를 질리지 않고 계속 할 수 있는 힘은 몇 년이면 없어진다.
사랑은 어떤가? 영원한 사랑도 있겠지만 결혼하고 애들 키우면서 바람을 피우는 사람도 많다. 사랑도 닳아서 없어진다.
하지만 모두가 몇 십 분만 공부하거나 몇 년만에 회사를 그만두거나 애인을 몇 개월 단위로 바꾸거나 하지 않는다.
왜? 닳아서 없어지는 분량을 대체할 만큼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다시 원동력으로 하기 때문에.
처음 시작할 때의 열정을 태워서 이만큼은 성공의 기쁨으로, 또 이만큼은 새로운 단계나 미지의 분야로 도전하는 설레임으로 끊임없이 바꿔 나간다.
그래서 닳아서 없어지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다. 게다가 열심히 할 수록 당연히 닳는 것도 당연히 빠르다. 운동도 열심히 하면 관절이 닳는다. 그러니 너무 무리하면 안 된다.
문제는 단지 없어지기만 하고 새로운 것으로 전환되지 않는 경우 무너지거나 잘못된 결과를 야기하게 된다는 데 있다.
- 더 이상 일에서 아무 보람을 느낄 수가 없다. 이렇게 일해서 나에게 남는 건 무엇인가 하는 생각만 든다
- 내가 이 사람을 왜 좋아했을까. 더 이상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닳아 없어지기만 하면 이렇게 된다.
결국 내 존재가치에 대한 확신의 모든 모서리가 닳아 없어지면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냥 소모되어 없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 대상이 일이든 사람이든, 보다 깊게 넓게 새롭게 접근하고 싶은 열망, 관계있는 다른 일이나 사람으로의 관심의 확장.
하나의 생각으로부터 많은 가지가 뻗어나가고 그것이 반복되듯이, 하나를 태워서 그 이상을 새로 만들어내는 능력은 언제나 살아 있어야 한다.
끝이 없는 다리를 달려서 건너고 있는데 다리는 뒤에서부터 계속 무너져 내리고 있으니 그보다 더 빨리 뛰어야 한다.
열정으로 버틸 수 있는 단계를 지나려면 재미가 필요하다. 재미로 하다 보면 또 열정이 생기고, 그렇게 힘들게 불태우다가 또 다른 것에도 재미가 생기고, 이것이 반복되어야 한다.
김정운 교수의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이것이다. 삶의 목적 상실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재미라는 원동력이 필요하고, 어떻게 생활에서 그것을 얻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
그런데 그게 실제로는 참 힘들다. 소모되기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한 번 빠지면 벗어나기 힘들다. 힘들수록 자신만의 안식처가 필요한데 그것도 쉽지가 않다.
우리나라가 괜히 OECD 국가들 중 자살율 1위이겠는가.
만드는 것과 유지하는 것은 별개가 아니라 서로 반복되어 돌아가는 것이어서 결국 하나이다.
그런데 막상 나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열심히 재미있게 살자고 힘을 내 보자.
Posted at 09:31 오전 | Permalink | Comments (1) | TrackBack (0)
typepad 로그인 안 해도 댓글 달기 가능합니다.
무조건 로그인해야 댓글 달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누구든 댓글 달 수 있도록 설정할 수 있다는 걸 얼마 전에 발견했네요.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댓글을 적어 주세요~.
Posted at 06:52 오후 | Permalink | Comments (0)
소설들을 할인된 가격에 사보자고 가입한 민음 북클럽.
세계문학전집도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고, 북클럽 회원 대상 할인판매도 매달 하기 때문에 혜택이 쏠쏠하다.
(몰랐으면 안 샀을 책들을 자꾸 소개해줘서 사게 되는 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ㅎㅎ)
그런데 얼마 전 민음사에서 예고도 없이 택배가 왔길래 뭘까 하고 봤더니, 북클럽 회원 100명에게 신간 '그레이트 하우스'의 가제본판을 깜짝 선물로 보내 준 것이었다! 이런 반가울 데가 있나.
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냥 책도 아니고 아직 출판되지 않은 테스트버젼을 보내주다니 정말 기분좋아지는 선물이었다.
니콜 크라우스는 74년생으로 스텐포드와 옥스퍼드 출신의 천재 작가라고 한다. (비교되니 괜히 슬퍼지네.) 이 작가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니 작가에 대해서는 더이상의 설명 생략.
책의 대략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YES24 를 보면 자세히 나와 있다.
책상 하나에 얽힌 여러 시대의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
이 책상은 그냥 책상이 아니라 소유자의 (아니면 책상에 지배받는 자의?) 영혼의 큰 부분을 잠식하는 거대한 미지의 덩어리와 같이 묘사된다.
( 소설인데도 영화처럼 트레일러가 있다. 여기서도 비슷한 이미지로 그리고 있다. )
몇 개의 이야기가 따로 펼쳐지면서 약간씩의 접점을 갖고 진행되는데, 마치 영화 '매그놀리아' 를 보는 느낌이었다.
어리둥절한 상태로 읽다 보면 하나씩 인물들간의 연결점이 생긴다는 점에서, 그리고 약간의 반전도 가끔 등장한다는 면에서 미스테리의 성격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이야기가 하나로 정리되면서 완결되지는 않는다. 나의 인생은 나의 인생, 너의 불행은 너의 불행, 그의 삶은 그의 삶. 하나의 책상 주변으로 시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여러 삶들.
모든 에피소드에 두 가지 상반된 타입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이 재미있다.
내면으로 침잠하고, 타인과 외부세계에 대해 무심하며, 무언가 결여된 듯한, 하지만 어떤 성격의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사람.
그리고 반대로 타인에게서 무언가를 갈구하는 사람.
첫번째 타입의 사람이 화자가 되기도 하고, 두번째가 화자가 되기도 하면서 자신과 상대방의 문제가 무엇인지, 갈등이 어떻게 진행되어서 어떤 결말을 가져왔는지를 이야기한다.
갈등이 어떻게 '해결'되는지는 별로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 책은 시트콤이 아니다. 어떻게 흘러가는지가 중요하다.
양자역학적 불확실성에 가까운, '확실한 것, 항상 그러한 것은 없다' 가 전체를 관통하는 명제라고 느껴진다. (그거 말고도 주제는 많겠지만)
이와 관련된 인상깊은 구절들 :
"가끔 그런 순간들이 있잖아요. 갑자기 모든 게 분명해지고, 생활을, 특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생활을 계속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환상을 지키기 위해 잊어버리거나 일부러 무시하기로 했던 어떤 다른 차원, 그 차원을 가리고 있던 벽 너머가 보이는 그런 순간이요."
"삶이 지금까지처럼만 계속된다면, 자기 전 벽 앞에 세워 둔 의자가 다음 날 아침에도 그대로 그 자리에 있기만 하다면, 우리가 나란히 누워 자는 동안 의자에 무슨 일이 생겨도 괜찮다고, 그 의자가 같은 의자든 아니면 천 개의 다른 의자든 상관없고, 긴 밤사이에 잠깐 사라져도 상관없었다. 다음 날 아침 내가 거기에 앉아 매일 아침 하듯이 신발을 신는 동안, 나의 몸을 받쳐 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그저 우리가 함께 지내는 삶이 언제나처럼 계속될 거라는 것만 알면 되었다."
마지막까지 재미있는 이야기이고, 니콜 클라우스라는 좋은 작가를 알게 되었고 그의 다른 책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좋은 책인 건 분명한 것 같고.
끝까지 읽으면 살면서 자주 부딪힐 한 가지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결책('없으면 만들면 된다') 도 얻을 수 있다. 이거 굉장히 중요한 거지!
좋은 책을 보내 주신 민음사에 감사드리고, 또 이런 기회가 종종 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at 02:44 오전 | Permalink | Comments (0)
Posted at 09:26 오후 | Permalink | Comments (3)
개인적인 관점을 벗어나서 보면 우리의 가치는 결국 우리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기는가로 결정된다.
Posted at 05:43 오후 | Permalink | Comments (0)
작년 9월인가 구글 코드잼 문제 하나 풀이를 여기다 올린 적이 있는데
Posted at 10:26 오전 | Permalink | Comment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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